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 사건 사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

반응형

 

영화 1987은 2017년 장준환 감독의 작품으로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김의성 조우진 설경구 여진구 강동원 문성근 오달수 고창석 우현 등의 우리나라 최고 배우들이 참여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영화 1987은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1987년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다룬 영화입니다.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 중이던 22세 박종철은 1987년 1월 13일 하숙하고 있던 집에서 불법 체포가 됩니다.

그렇게 불법으로 연행된 박종철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하룻밤 만에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사망에 이르게 된 이유는 경찰들의 불법적인 구타와 고문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박종철이 경찰에 불법적으로 체포되어 고문과 구타를 당한 이유는 당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박종운을 숨겨준 혐의였습니다.

 

 

잠시 여담으로 박종철이 죽음으로 지킨 박종운은 2000년 한나라당에 입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에서 16대 17대 18대 국회의원에 3번 도전하게 되지만 낙선합니다.

 

1987년 1월 14일 중앙대 부속 용산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오연상은 긴급 호출을 받고 경찰들과 함께 남영동 대공분실에 도착하게 됩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호선 남영역과 맞닿아 있습니다.

당시 박종철 열사가 고문과 구타를 당했던 대공분실 509호는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용산병원 의사 오연상 씨의 증언으로는 대공분실에 입장했을 당시 방바닥은 물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종철은 온몸이 젖어있었고 속옷만 입고 누워있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당시 주변 경찰들은 오연상 의사에게 박종철 군이 전날 과음을 했는지 갈증이 심하다고 하여 물을 주었고 그 물을 마시다가 갑자기 호흡이 멈춰 쓰러졌으니 처치를 해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호흡이 없는 박종철을 본 오연상 의사는 긴급 처치를 시작하는데 청진기로 확인을 해보니 배속에는 물이 가득한 것처럼 보였고 배가 부풀어 오른 상태라고 했습니다.

이미 사망한 상태로 보였으나 오연상 의사는 경찰들 앞에서 30분간 응급처치를 하게 됩니다.

 

 

2016년에 중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연상 의사는 

그 정도면 물에 빠져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정황상 심한 물고문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라고 인터뷰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의 드는 점은 당시 경찰들이 왜 의사를 불러 이 사건에 대한 목격자를 만들었을까 인데요.

당시 상부에서는 일선 경찰들의 너무 심한 폭력성 때문에 큰 사건들이 많이 터지자 상부에서 조금 자중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연상 의사를 불러 박종철을 살리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 때문에 국민들이 이 사건에 대해서 알게 되고 분노하게 됩니다.

 

결국 소생시키지 못하고 오연상 의사는 박종철의 사망선고를 하게 됩니다.

경찰들은 사망의 이유를 조작하고 책임을 피하기 위해 사망한 박종철을 용산병원 응급실로 옮기기로 합니다.

 

2016년 중대신문 인터뷰 중에 

경찰들이 사망 장소를 대공분실이 아닌 응급실로 하려고 한다.

가서 전기 충격기를 이용해 소생시켜 보자는 말에 전기고문도 묻어버리려고 한다 라고 생각했다.

라고 오연상 의사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경찰들이 박종철의 시신을 용산병원 응급실로 옮기려고 하는 사이에 오연상 의사는 몰래 용산병원으로 전화를 해서 지금 시신이 한구 가는데 절대로 응급실로 보내지 말라 라고 합니다.

 

경찰이 시신을 가지고 응급실로 갔지만 응급실 앞에서 교수들과 병원 관계자들은 경찰들의 진입을 막게 되고 어쩔 수 없던 경찰들은 박종철의 시신을 경찰병원으로 이송하게 됩니다.

 

젊은 대학생의 시신이 남영동에서 나와 여러 병원을 돌게 되고 오연상 의사를 비롯한 목격자도 많이 생기게 됨에 따라서 이 사건은 서서히 언론에 퍼지게 됩니다.

 

현재 성균관 대학교 교수이자 당시 중앙일보의 사회부 기자였던 신성호 기자는 검찰청을 돌아다니며 취재거리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뜸 공안과장이 경찰 큰일 났다 라고 합니다.

검찰의 던지기였는지 아니면 기자의 본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성호 기자와 동료들은 서울대생 박종철이라는 이름을 알게 됩니다.

신성호 기자는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보도를 작게 내게 됩니다.

이 기사를 시발점으로 국가의 언론 통제는 힘을 잃어가게 됩니다.

 

다른 언론사들도 박종철 사망사건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이 보도들을 접한 당시 치안본부 현재 경찰청은 단순 쇼크사에 의한 사망일 뿐이라며 거짓으로 발표를 하게 됩니다.

 

 

아주 유명한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당시 총책임자 격인 치안본부 치안감 박처원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흥분한 수사관이 책상을 탁 하고 치니까 억 하고 쓰러지더랍니다"

 

이 발언은 그야말로 국민의 분노를 이끌어 내었고 언론들도 앞다투어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언론들은 최초 목격자인 오연상 의사를 찾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미 경찰들은 오연상 의사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보호를 명목으로 감시를 당하던 오연상 의사는 화장실에 갔다가 그곳에 숨어서 자신을 기다리던 어떤 기자를 만나게 됩니다.

오연상 의사는 그 의사에게 바닥에 물이 있었고 욕조가 있었다.

그리고 폐에서는 수포음이 들렸다고 진술하게 됩니다.

오연상 의사는 이 일 때문에 신길동에 대공분실로 끌려가서 16시간의 조사를 받습니다.

 

운동권도 아니었던 오연상 의사가 심지어 보수적이었던 그가 목숨을 걸로 이러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의사로서의 신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자신은 의사로서 알고 있는 것을 그저 솔직히 말했을 뿐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게 되자 당시 검찰은 박종철 부검의로 당시 국립 과학 수사연구소 황적준 박사를 지정하게 됩니다.

원래 부검은 대체로 경찰병원에서 이루어졌지만 경찰의 또 다른 조작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 검찰은 박종철의 부검 장소를 한양대 병원으로 변경하고 공정성과 확실한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하여 또 다른 부검의를 2명 더 추가합니다.

 

이 부검으로 말 그래도 판이 뒤집히게 됩니다.

경찰의 쇼크사라는 발표와는 달리 부검 결과 사인은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 즉 누군가가 박종철을 죽였다는 결론이 나게 됩니다.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이 소식을 듣고 황적준 박사를 부르게 됩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경찰청장의 직급입니다.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부검 소견을 바꾸라며 현금 백만 원과 함께 황적준 박사를 압박합니다.

황적준 박사는 이때 절대로 부검 소견서는 수정하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사실만을 말할 거라고 얘기했고 아내분도 그 결정을 응원해 주셨다고 합니다.

그 시절 저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존경스럽습니다.

 

이후 황적준 박사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국과수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후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제 양심이자 직업윤리였습니다."

라고 말하며 후회는 없다고 합니다.

 

이 부검 소견서 때문에 박종철의 사인은 물고문에 의한 죽음으로 밝혀집니다.

더 이상 경찰은 발뺌하지 못하고 물고문을 시인하게 됩니다.

 

당시 치안본부장 강민창은 박종철의 머리를 욕조 물에 잠시 집어넣었다가 내놓았으나 계속 진술을 거부하면서 완강히 반항하자 다시 머리를 욕조 물에 밀어 넣는 과정에서 진실 사망한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경찰 2명이 구속됩니다.

구속될 당시에 경찰은 구속되는 인원과 같은 옷을 입은 경찰들 10여 명을 같은 차에 태워서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게 만듭니다.

당시 경찰의 제 식구 감싸기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고문 가담 경찰관이 구속되고 김종호 내무부장관과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해임되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싶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에서 이어가겠습니다..

 

2021.06.17 - [이슈 사건 사고] - 성수대교 붕괴 참사 사고

 

성수대교 붕괴 참사 사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날 밤 어느 뉴스 앵커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걱정들 했는데도 기어이.. 오늘 성수대교 붕괴 참사는 예고된 인재였습니다" 지난번에 알아보았던 삼풍백화점 붕괴 참

dolbbit.tistory.com

2021.06.16 - [이슈 사건 사고] -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사고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사고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사고들은 하나하나 돌아보고 있는데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에 이어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

dolbbit.tistory.com

 

반응형

'대한민국 사건 사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3년 제 14호 태풍 매미  (0) 2022.09.03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2  (0) 2021.07.01
성수대교 붕괴 참사 사고  (0) 2021.06.17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사고  (0) 2021.06.16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  (0) 2021.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