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3대 미제사건이 있었습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이형호 군 유괴 살인 사건 그리고 1991년 대구에서 벌어진 개구리 소년 실종 살인 사건이 그것입니다.
다행(?) 히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경찰의 재수사를 통해 2019년 범인 이춘재의 자백을 받아내어 미제 사건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고 이형호 군 살인 사건과 개구리 소년 실종 살인 사건 또한 미제 사건에서 벗어나 고인과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991년 3월 26일 집 근처 와룡산으로 도롱뇽 알을 찾으러 나간 다섯 아이들은 실종이 됩니다.
그 후 2002년 9월 26일 실종된 아이들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은 대구 성서초등생 살인 암매장 사건으로 바뀌어 불리게 됩니다.
유골로 발견된 아이들은 당시 6학년 1979년생 우철원, 5학년 1980년생 조호연, 4학년 1981년생 김영규, 3학년 1982년생 박찬인, 당시 3학년 1983년생 김종식 군입니다.
당시는 선거가 있던 날이어서 임시공휴일이었습니다.
원래 실종된 아이들은 알려진 것과 같은 개구리 알이 아닌 도롱뇽 알을 채집하기 위해서 모입니다.
출발 당시에는 6명의 아이들이 움직이려 했으나 그중 한 명 김태룡 군은 아침 식사를 위해 집으로 돌아갑니다.
나머지 5명의 아이들은 부모님과 집에는 도롱뇽 알을 잡으러 간다고 와룡산으로 이동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동하는 중에 만난 친구들의 진술 중에 아이들이 탄피를 주우러 간다고 말했다는 진술 또한 있어서 근처 군 사격장에 탄피를 주우러 갔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종된 조호연 군의 형인 조무연 군은 와룡산 입구에서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은 형에게 도롱뇽 알을 찾으러 간다고 말을 했고 조무연 군은 그렇게 아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오전 9시 정도에는 같은 마을에 사는 김순남 아주머니가 아이들을 목격했고 2시간 안에 다녀올 수 있을까 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12시쯤 아이들을 와룡산 입구에서 봤다는 우철원군의 같은 반 친구인 김경열 군과 이태석 군의 진술도 있었습니다.
14시 무렵에는 아이들이 와룡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봤다는 김이수 아주머니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당시 비슷한 시각에 와룡산에서 도롱뇽 알을 찾고 있던 다른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함승훈 군은 아이들과 같은 학교 4학년에 다니고 있었는데 당일 와룡산에서 도롱뇽 알을 찾다가 산 위쪽에서 10초 정도의 간격으로 비명소리를 2번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함승훈 군과 함께 있던 형들은 그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으나 함승훈 군은 아마 11시 반 정도였을 것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부모님들은 오후 6시 정도부터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지만 찾을 수 없었고 오후 8시경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게 됩니다.
당시 경찰들은 부모님들과 함께 와룡산을 새벽 3시까지 수색했으나 아이들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는 경찰의 헛발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 경찰은 아이들이 가출을 했다고 생각해서 본격적인 수사는 늦게 시작되게 됩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다고 언론에서 이 내용을 보도하게 되고 여론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5월 5일 어린이 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의 지시로 와룡산 근처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집중 수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공개로 돌려 사건을 풀어나가게 되고 아이들에게 현상금까지 붙게 됩니다.
여기서 또 수사에 혼선을 주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큰 현상금에 탐을 낸 사람들이 허위신고를 하거나 장난전화를 하는 둥 사람 같지 않은 짓거리들을 합니다(아.. 화나네..)
어느 대학교수는 아이들 중 한 명의 아버지를 용의자로 지목하면서 집을 수생 하였지만 거짓으로 판명됩니다.
이렇게 1991년 사건이 일어난 후 1996년까지 5년 동안 연인원 35만 명을 동원하여 아이들을 찾아 나섰지만 발견하지 못하자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 거나 납북되었다 는 미확인 소문들이 돌기도 합니다.
1997년에는 자신이 개구리 소년들을 살해 후 암매장했다는 여자가 있었지만 허위로 밝혀졌고 2001년에는 전남 신안의 한 염전에서 아이들이 있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허위로 밝혀졌습니다.
그렇게 1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2002년 9월 26일 와룡산에 도토리를 주우러 간 동네 주민에 의해서 아이들의 유골을 발견되게 됩니다.
참 어이가 없는 게 아이들의 유골이 발견된 지점은 아이들의 집에서 불과 10분 거리였습니다.
유골의 상태는 끔찍했습니다.
둔기로 20회 이상 두개골을 찍은 흔적들도 있었으며 뼈 이곳저곳에는 골절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묶은 흔적들 또한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서 또 경찰이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유골 발견 장소를 현장보존도 하지 않고 과학수사대도 없이 임의로 삽과 곡괭이 등을 이용해서 현장이 훼손되었고 살해의 흔적을 보았음에도 타살 흔적은 없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해서 유가족의 분노를 사고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부검 결과 아이들은 타살된 것이라는 발표가 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정확한 사망 원인과 살해도구를 밝히기는 어려웠으며 범인을 알아내기도 불가능했습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밝혀진 게 많지 않습니다.
2015년 재수사를 한다고 밝혔으나 화성 사건과 같이 결정적이 증거가 보관된 것이 아니기에 어려움이 따른다고 합니다.
현재 와룡산에는 실종 개구리 소년들을 위한 추모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사건이 잊히지 않아서 범인을 꼭 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아이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
아니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찌질하고 등신 같은 미친 또라이 사이코패스 한심한 놈아, 네놈이 인간이라면 꼭 자수해서 아이들과 유가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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