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사고들은 하나하나 돌아보고 있는데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에 이어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는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경에 일어난 사상자 1500여 명을 낸 큰 사고입니다.
현재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부지가 당시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난 장소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앞으로 다룰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 2개월 후에 또 성수대교 붕괴 사고 8개월 후에 연달아 일어난 대형 참사였으며 6.25 한국 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를 일으킨 사건인 만큼 당시 국민들의 사회적 충격은 매우 컸습니다.
각종 비리와 부실로 지은 삼풍백화점의 붕괴 사고로 인하여 대한민국 건축법의 강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9년 12월 1일 강남 한 복판에 거대 최신식 백화점이 개장하게 됩니다.
당시 80년대는 개발 붐이 일어난 시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서울 특히 강남을 중심으로 당시 기준 초대형 건축물들이 올라가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삼풍백화점은 1987년 5월 착공하여 1989년 12월 1일 개점하였습니다.
당시 명동에 위치하고 있던 롯데백화점 본점에 이어서 당시 전국 2위 규모의 거대 백화점 이었습니다.
현재와 비교하자면 이케아 광명점이 당시 삼풍백화점 규모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삼풍백화점은 태생적으로 불법으로 지어진 건축물이었습니다.
원래 삼풍백화점이 세워진 부지는 주거용 부지였습니다.
하지만 삼풍 측은 삼풍백화점과 삼풍아파트의 건설을 위하여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었고 부지 용도를 변경하여서 부정과 비리로 점철된 공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삼풍백화점은 대규모 아파트에 가까운 곳에 세워지게 되었고 하마터면 삼풍백화점이 붕괴되면서 아파트까지 연쇄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던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삼풍백화점은 무량판 건축이라고 해서 한 층을 보 없이 기둥으로만 지지하게끔 만들어졌습니다.
무량판 건축의 핵심은 지지를 하기 위해서 기둥의 두께가 두꺼워야 하고 기둥 숫자 또한 많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삼풍 측은 비용 절감과 건축 시간 단축을 위하여 기둥 하나하나의 두께를 줄이고 개수 또한 줄이게 됩니다.
또한 건축주인 이준 회장은 지하 4층 지상 4층의 기존 설계에 1층을 추가하여 총 5층으로 백화점을 증축할 것을 당시 시공사 우성건설에 요구했습니다.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성건설은 붕괴 위험성을 이유로 거절하게 됩니다.
그래서 건축주 이준 회장은 우성건설과의 계약을 중도 파기하고 삼풍건설이 건설을 이어가게 됩니다.
공사가 끝난 후에도 준공검사를 받았어야 했지만 각종 부정과 비리로 무마시키고 넘어가게 됩니다.
후에 밝혀진 사실로는 백화점 개설 승인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3시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담당 공무원은 현장에 나가지도 않고 20여 개가 넘는 검사 항목을 이상 없음으로 개설 승인해 주었고 후에 구속됐다고 합니다.
후에 검찰 조사로 밝혀진 사실은 5명의 공무원이 4차례에 걸쳐서 6천50만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증축된 5층에는 원래 바닥 하중이 가벼운 롤러장을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고급 백화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식당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문제는 식당가가 들어서게 되면 냉장고를 비롯한 각종 무거운 물품들이 들어서게 되었고 온돌 난방장치까지 설치하게 되어 전문가들의 의견으로는 약 3층을 더 올린 무게가 5층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4층짜리 무게를 견디기도 빠듯한 기둥에 약 7~8층이 되는 무게가 얹어진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백화점 옥상에 설치한 80톤가량의 냉각탑까지
당시 옥상의 하중은 규정된 안전 하중의 4배에 달했다고 합니다.
설마 무너지기야 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과 건물의 안전성을 무시한 이준 회장의 독단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미 붕괴 2달 전부터 천장에 금이 가는 등 붕괴 전조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펀칭 현상이라고 해서 붉은 원에 보이는 것과 같이 기둥 주위가 깨지는 현상이 붕괴 전날 발견되게 됩니다.
전날 밤 백화점 내 순찬을 돌던 경비원의 증언으로는 백화점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에 관한 사항을 보고했으나 백화점 측에서는 가림막으로 바닥의 구멍을 가리고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붕괴 당일 오전에는 5층 식당가에 물이 새기 시작했고 설치된 테이블이 심하게 기울어질 정도로 바닥 또한 한쪽으로 꺼지게 됩니다.
붕괴 당일 오후 백화점에서는 회의가 있었습니다.
당일 영업이 끝난 후에 백화점 상층부에 대한 보수를 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회의 후에 한다는 짓은 당시 4층에서 열렸던 보석 전시회의 보석을 대피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부실과 비리로 지어진 삼풍백화점은 1995년 6월 29일 오후 5시 55분경 기둥이 판을 뚫으면서 상층부부터 연쇄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던 초호화 거대 백화점이 무너지는데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저녁 찬거리를 구입하던 주부들의 피해가 컸다고 합니다.
당시 지하의 식품점에는 많은 수의 희생자가 있었는데 대부분 주부였다고 합니다.
많은 구조요원들의 희생과 봉사로 많은 인명을 구해낼 수 있었지만 사실 당시의 구조 환경 또한 좋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대형 사고가 없었을뿐더러 아직 구조 시스템이 완벽하게 적용되기 이전의 상황이라 사고 초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었고 지휘체계가 정립된 시기가 아니라 청와대에서 개입을 하여 현장 지휘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좀 더 체계적으로 구조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1995년 중앙 119 구조대가 창설되게 됩니다.
또 이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자원봉사를 핑계로 범죄행위가 많이 적발됩니다.
백화점 안에 남아있는 물건들을 절도하거나 봉사자들에게 돌아갈 물건들을 함부로 취득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슬픔에 젖은 유족들에게 접근해서 시신 발굴을 핑계로 금품을 요구하는 일까지 생기게 됩니다.
삼풍 백화점 참사 이후 삼풍건설을 쉽게 말하면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폭풍 또한 심했었는데 중소기업이 1000개 이상 부도 처리되었고 당시 삼풍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으며 1997년 닥친 IMF 외환 위기와 함께 다른 곳에서도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삼풍건설로부터 뇌물을 받았던 비리 공무원들은 실형을 살게 되었고 삼풍건설의 회장 이준 씨는 징역 7년 6개월을 선고받고 2003년 만기 출소한 후에 그 해 10월 4일 사망하게 됩니다.
유가족에게는 사망자 1인당 3억 8천만 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고 합니다.
삼풍의 배상금으로는 충당이 불가하여 당시 서울시에서 금액을 보태어 총 3317억의 배상금이 지급되었다고 하네요.
현재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탑은 양재 시민의 숲에 위치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참사 지점이 아닌 곳에 위령탑이 있는 것이 상당히 불만입니다.
참사 지점에 위령탑이 세워지면 땅값이 떨어진다는 반발로 인하여 무산되었다고 합니다.
이 위령비에 꽃을 훔쳐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유가족에서 경고문을 붙여 놓았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합니다.
전 세계에서 사망자가 10번째로 많은 참사로 기록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일이 다시는 발생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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